top of page

디너처치(Dinner Church)-2026년 6월 활천

  • 작성자 사진: 주 상락
    주 상락
  • 7월 10일
  • 3분 분량

.

디너교회 선교적 스토리


    미국 워싱턴주의 디너교회운동은 베론 포스너로부터 공동체 중심 선교를 위해 시작되었고, 시애틀 지역 중심으로 ‘공동체 디너운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 운동은 공공 또는 공동체의 공간에서 식탁을 공유하며 모이는 단순한 모임으로 보인다. 그러나, 디너교회운동은 소비적이고 파편화된 공동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공동체성을 경험 할 수 있는 귀한 선교적 기회를 제공한다. 디너교회운동은 전통적 교회 공간에 방문을 꺼려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리스도의 환대를 보여 주기 위해 시작되었다. 베론 포스너가 시작한 시애틀 지역에 ‘공동체 디너운동’은 지역교회와 비영리단체 등과 연합하여 다양한 이웃들과 함께하는 이웃 사랑을 실천한다. 전도학자이자 미국 감리교회 감독인 스캇 존스(Scott J. Jones)는 이웃 사랑의 실천은 복음 전도의 통로가 되며, 형제 사랑은 환대와 긴밀하게 연결된다고 강조한다: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13:1-2). 여기서 ‘손님 대접’은 ‘환대’(hospitality)를 의미한다. 디너교회운동의 철학은 초대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방식인 ‘케리그마’를 선포하기 위해 식탁 공동체인 ‘아가페 피스트’(Agape Feast)를 실천한 것에 기인한다. 이 선교적 환대를 실천하기 위해 포스너는 매주 수요일 시애틀시 한 공간에서 공동체 디너를 이웃들 위해 배풀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주도하는 주중 다른 날에 마을회관, 주차장, 그리고 창고 등 다양한 공간에서 모이는 디너교회 모임들도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예를 들면, 타코마 지역에서는 디너교회 모임을 ‘선교적 교회운동’과 연결하는 모임이 ‘제 3의 장소’에서 활발하게 모이고 있으며, 그들은 그 모임을 ‘선교적 공동체’라고 부른다. 그들은 보내심의 선교적 소명을 성취하기 위해 비신자들, 가나안 교인들과 연결을 시도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워싱턴주 서부에 있는 리버시티교회(River City Church)는 클락스토시에서 수요일마다 비신자들과 눈높이에 맞게 소통하기 위해 디너교회를 통해 식사와 코이노니아를 함께한다. 또한, ‘사운드 제널네이션스’(Sound Generaions)는 시애틀, 어번, 벌라드, 그리고 벤톤시 등에서 거대한 공동체 디너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이들 지역에서 다양한 교회들과 기독교 기관들이 호스트를 하고 지역과 연결하기 위해서 함께 식탁을 나눈다. 디너교회운동은 새로운 프로그램이라고 하기 보다는 성경안에 교회론을 따르며, 회복을 통해 진정한 기독교의 공동체성을 꿈꾸는 모델이다. 그러므로, 디너교회의 ‘아가페 식탁’은 1-3세기의 초대교회, 사도시대를 모델로 삼는다.


디너교회의 네 가지 신학적, 선교적 목표들


    초대교회를 모델로 삼는 디너교회는 첫째 식탁 공동체 중심으로 모인다. 즉, 그들은 교회 강단이나 전통적 예배당에서 모이기 보다는 다양한 공간들에서 식탁 주변에 모인다. 성경 안에서 ‘예수님의 활동’도 총 132번 중 공적 장소에서 10번, 공적 장소가 아닌 일상(시장)에서 122번이 이루어 졌고, ‘예수님의 비유’도 공적장소에서 7번, 일상에서 45번 나타나기 때문에 예수님의 다수의 사역이 일상에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18세기 존 웨슬리도 영국에서 교회의 문턱이 높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그들이 교회에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대신 그들이 이미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는 그들에게 몸을 씻고 교회로 들어오라고 하는 대신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그들이 있는 장터, 탄광, 그리고 벽돌 공장에 방문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통틀어서,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를 가장 잘 드러내는 일상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식탁으로 초대하셨다는 부분이다. 김호경은 그의 책 <예수의 식탁이야기>에서 ‘끼리의 변주’라는 주제로 “섞일 수 없는 사람들이 끼리의 관계를 넓혀 가면서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은 복된 구원의 징표다”라고 표현하다. 디너교회는 예수님처럼 일상인 식탁에서 구원의 서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둘째, 디너교회는 ‘소외된 이웃들’을 초대한다. 예수님의 식탁은 죄인 및 소외된 이웃들에게 생명을 주며 그들을 일으켰다. 김호경의 표현처럼, “밥은 부수적이며 주체는 예수님 그분 자체였다.” 예수님은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행위를 통해 율법과 사회적 장벽을 허물고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회복시키셨다. 이렇듯 식탁은 단순한 식사를 넘어서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자리로서 환대와 사랑을 나누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즉, 식탁을 나누는 것은 주님안에서 한 가족으로서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함을 의미한다.

    셋째, 식탁은 단지 식사를 하는 자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이야기’를 나누는 케리그마의 현장이다. ‘케리그마’는 헬라어로 ‘선포하다’, ‘전달하다’라는 뜻이다. 즉, 케리그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과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의미한다. 케리그마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복음 전파를 하는 핵심이며, 죄인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선교적 이야기를 뜻한다. 디너교회의 리더들은 식탁에서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케리그마를 선포한다, 그러나 이 선포이전에 리더들은 ‘경청’을 통해 초대된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쌓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경청하며 서로 사랑을 나누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면, 상처 받은 사람들이 위로를 얻고 복음의 장, 치유의 장이 열릴 준비가 된다.

    마지막으로, 식탁 공동체는 ‘급진적 친밀감’을 만든다. 디너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전통적, 사회적 장애물 없이 이웃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공동체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가족과 같은 친밀감을 만드는데 있다. 현대 사회에서 ‘제 1 공간’인 가정도 사랑과 신뢰보다는 기능적 역할만 감당할 때가 많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제 1 공간인 가정으로 보내시고 ‘선교적 가정’을 이루길 원하신다. 예수님께서 “두세 사람이 내이름으로 모인곳에 내가 있겠다”하신 것(마 18:20)처럼, 가정 공동체도 교회이며 가정과 같은 디너 교회도 교회 공동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디너교회는 ‘가정과 같은 교회’로서 상호간에 사랑과 환대로서 친밀감을 느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사회적 자본인 신뢰가 바닥인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족과 같은 ‘급진적 친밀감’보다 제도화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부분은 공동체성과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 소비주의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교회가 아닌 다른 단체, 클럽, 조직, 그리고 온라인에서 친밀감을 느낀다. 그러나, 예수님 중심 공동체가 아닌 조직에서 진정한 기쁨과 공동체적 회복을 경험 할 수 없다. 디너교회는 상호간의 친밀감을 회복하고 초대교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훌륭한 모델이다.

 
 
 

댓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