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마이크로처치: 작지만 강한교회, 교회안 작은 교회(활천 2026년 7월호 기고)

  • 작성자 사진: 주 상락
    주 상락
  • 7월 13일
  • 5분 분량

21세기 한국 교회는 사회적 자본인 교회 신뢰도의 저하와 다음세대 급격한 쇠퇴라는 두 가지 큰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 두 위기는 결국 같은 신학적 질문을 가진다. 즉,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교회론적 문제이다.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Tampa)에서 1996년부터 시작된 브라이언 샌더스(Brian Sanders)의 ‘마이크로 처치 운동’(The Microchurch Movement)은 바로 이 교회론적 질문에 대한 30년에 걸친 신학적·실천적 응답의 결과물이다. 본고는 샌더스의 마이크로 처치 신학을 ‘교회의 최소 본질(Ecclesial Minimum)’ 개념을 중심으로 살피고, 한국 교회의 구조 안에서 근본적 문제인 ‘교회론’을 간단히 다루고자 한다.


탬파 언더그라운드와 ‘교회의 최소 본질(Ecclesial Minimum)’     

                     

  샌더스가 설립한 언더그라운드 네트워크(Underground Network)는 현재 200개 이상의 마이크로 처치를 품은 도시 선교 생태계로 성장했다. 그가 자신의 책 『마이크로 처치들: 더 작아지는 길(Microchurches: A Smaller Way)』에서 정의하는 마이크로 처치의 핵심은 ‘교회의 최소 본질’이다. 그것은 예배(worship), 공동체(community), 그리고 선교(mission)의 세 가지 의도된 실천이 결합된, 교회의 가장 단순한 단위다. 샌더스는 단언한다: “이 세 요소가 함께 있는 자리는 어디나 교회이며, 이 셋 가운데 하나라도 없는 모임은 아무리 친밀하더라도 아직 교회가 아니다.” 마이크로 처치는 교회의 ‘부분’이 아니라 ‘교회자체’이다. 그것은 어느 큰 교회의 하위 그룹이나 분교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온전한 교회다. 또한, 마이크로 처치를 교회로 만드는 것은 크기가 아니라 본질이다. 예배·공동체·선교라는 세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면, 회중이 6명이든 60명이든 그것은 이미 교회이다. 이 정의는 종교개혁의 ‘교회 표지론(notae ecclesiae)’, 즉, 말씀의 순수한 선포와 성례의 합당한 시행을 선교적 차원에서 재해석한 것이다. 마이크로 처치는 더 작은 교회(smaller church)가 아니라, 더 본질적인 교회(more essential church)다. 그리고 이 본질은 건물의 크기나 회중의 규모와 무관하다. 샌더스는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만약 매주 주일 천 명이 모이지만 그 중 백 명도 선교에 참여하지 않는 교회와, 백 명이 모여 모두가 선교의 주체로 살아가는 교회 중 어느 것이 더 교회인가?” 이 질문에 답은 후자라는 것이 명백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 마땅하며, 그것이 교회의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micro)’라는 접두어는 단순히 ‘크기가 작다’는 양적 의미가 아니다. 21세기 들어 마이크로 비즈니스(microbusiness), 마이크로 스쿨(microschool), 마이크로 모빌리티(micromobility),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credit) 등 수많은 ‘마이크로’ 개념들이 등장하면서, 이 접두어는 ‘분산되고, 민첩하고, 참여 중심적이며, 사용자에게 권한이 부여된’ 새로운 사회적 단위를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마이크로 처치 또한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지만, 그것은 단지 작은 교회가 아니라, 교회의 가장 단순 하면서 중요한 선교적 사명으로 회귀함으로써 가장 본질적인 표현이 되고자 하는 신학적 시도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샌더스는 ‘대형 교회 반대론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자신을 ‘소형 옹호자’라고 명시한다. 즉, 마이크로 처치 운동은 대형 교회를 해체하는 운동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운동이다. 천 명이 모이는 교회 안에도 백 개의 마이크로 처치가 살아 있을 수 있고, 거꾸로 천 명이 모이지만 한 개의 마이크로 처치도 살아있지 않은 교회가 있을 수 있다.


마이크로 처치의 모델들


신약 교회 자체가 본질적으로 마이크로 처치였다. 사도행전 2장 46절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가정)에서 떡을 떼며”라고 기록한다. 로마서 16장 5절의 ‘너희 집에 있는 교회’, 고린도전서 16장 19절의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집에 있는 교회’, 골로새서 4장 15절의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 빌레몬서 2절의 ‘네 집에 있는 교회’ — 이 모든 본문이 보여주는 것은, 초대 교회의 표준 형태가 가정 기반의 마이크로 처치였다는 사실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기독교가 공인되고 바실리카(basilica) 양식의 대형 회당이 들어서기 전까지, 교회는 본질적으로 가정 단위로 모이는 작은 공동체였다.

종교개혁 이후 독일 경건주의(Pietism) 전통에서 필립 야콥 슈페너(Philipp Jakob Spener)는 ‘교회 안의 작은 교회(ecclesiola in ecclesia)’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교회 안에 친밀한 영적 공동체가 형성되어 깊은 영성과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모델이었다. 이 흐름을 이어받은 모라비안 형제단(Moravian Brethren)은 1727년 헤른후트(Herrnhut)에서 시작된 영적 부흥 이후, 작은 단위로 흩어져 ‘세계 선교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냈다. 1732년 8월 서인도 제도로 두 명의 평신도(한 명은 목수, 한 명은 옹기장이) 를 파송한 모라비안의 사례는 마이크로 처치적 선교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브라이언 샌더스는 그의 다섯 명의 자녀들이 일상에서 마이크로 처치를 개척하도록 장려했다. 그리고 자녀들은 일터, 학교, 그리고 삶의 자리에서 친구, 이웃들과 관계를 맺고 마이크로 처치를 개척하며 교회다운 삶을 살아내고 있다. 탬파 언더그라운드 네트워크의 마이크로 처치들은 그 다양성으로 마이크로 처치 신학의 적응력을 잘 보여준다. ‘세이프 패밀리스’(Safe Families for Children)는 가정의 위기에 처한 아동들을 지원하고 학대를 예방하는 마이크로 처치로 사명 자체가 공동체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전형적인 소달릭 모델이다. ‘마마 아프리카나’(Mama Africana)는 흑인 소녀들을 멘토링하는 사명에 집중된 공동체이며, 이 사명에 동참하지 않으면 그 공동체에 들어올 수 없다. ‘커뮤니티 콜렉티브’(Community Collective)는 도시에서 소외된 청소년·유색 인종을 섬기는 영적 가족과 같은 선교적 공동체를 형성했다. ‘에버라스팅’(Everlasting)은 운동 선수들이 모여 예배·공동체·선교를 이루는 운동 기반 마이크로 처치이다. 이 다양성이 보여주는 것은 “마이크로 처치는 정해진 양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에 띠라 다양한 형태들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한국 교회의 적용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 모델을 그대로 복제하려 하기보다, 각 지역과 사람들의 부르심에서 솟아나는 다양한 표현들을 인정하고 양성해야 한다.


마이크로 처치 신학적 토대 — 세 가지 기둥


  첫째, 예배이다. 샌더스에게 예배는 단순히 노래하거나 설교를 듣는 행위가 아니라 ‘예수의 적용된 주권(applied Lordship of Jesus)’을 확인하는 자리이다. 즉 예수가 다스리고 그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리이다. 이는 로마서 12장 1절의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의 회복이다. 예배는 주일 한 시간의 형식적 행위가 아니라, 일상 전체의 헌신이다. 마이크로 처치의 예배는 거실에서, 카페에서, 길거리에서, 일터에서 드려질 수 있다. 회중이 4명이든 40명이든 예수가 주(主)이며 그의 말씀이 다스리는 자리라면 그것은 진정한 예배다.

둘째, 공동체이다. 공동체는 단순히 ‘친교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가족 같은 공동체’이다. 초대 교회는 처음부터 그러한 공동체였다. 마가복음 3장 33-35절에서 예수는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라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교회의 본질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가족임을 못 박는 것이다. 마이크로 처치는 이러한 가족적 친밀성이 살아 있는 자리이며, 일반적인 셀·소그룹과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지점은 서로의 삶을 책임지는 깊이에 있다.

  셋째, 선교이다. 마이크로 처치 신학에서 가장 도전적인 부분은 선교를 교회의 ‘본질적 요소’로 정의한다는 점이다. 전통적 교회론에서 선교는 종종 ‘교회의 한 사역’으로 분류된다. 즉 교회가 먼저 있고, 그 교회가 선교를 한다. 그러나 샌더스는 이를 정면으로 거부한다.“선교는 교회의 부산물이 아니라, 교회를 교회로 만드는 본질이다.”이 원리에 따르면 마이크로 처치들은 결코 동일한 모습일 수 없다. 어떤 마이크로 처치는 가난한 자들을 섬기고, 어떤 마이크로 처치는 노숙자들과 함께 하며, 어떤 마이크로 처치는 일터에서 모이고, 어떤 마이크로 처치는 운동 동아리 형태를 띤다. 즉, 선교의 유형들이 다르므로 교회의 모양들도 다르다.


마이크로 처치의 구조적 특징들


 마이크로 처치의 가장 급진적 측면은 모든 마이크로 처치가 평신도에 의해 인도된다는 점이다. 이는 직제 자체의 해체가 아니라, 종교개혁이 선언했으나 실현되지 않은 만인제사장직의 실천적 회복이다. 안수받은 목회자는 마이크로 처치 리더들을 발견하고, 양성하고, 파송하는 사도적·교사적 역할로 재정렬된다(엡 4:11-12). 직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직분의 본래 기능인 ‘성도를 온전케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함’ 이 회복되는 것이다.                      마이크로 처치들은 고립된 채 흩어져 있지 않고 ‘네트워크(network)’로 연결된다. 탬파 언더그라운드는 200개 이상의 마이크로 처치를 품고 있지만, 중앙의 통제가 아니라 공동의 영적 DNA에 의해 연결된다. 이는 닐 콜(Neil Cole)이 강조하는 ‘유기적 교회(organic church)’의 모델과 정확히 호응한다. 콜은 “예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서 그분의 선교를 추구하기 위해 영적 가족으로 부름받은 존재”라고 선언하며, 교회는 조직(organization)이 아니라 유기체(organism)임을 강조한다. 네트워크는 분산된 통합(distributed unity)을 가능케 하며, 한 마디로 표현하면 ‘하나의 교회, 여러 표현들(One Church, Many Expressions)’이다.

마이크로 처치는 본질적으로 ‘증식하는(multiplying)’ 교회다. 한 교회가 더 커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교회를 낳는 것이 성공의 척도다. 이는 단순한 분리(division)가 아니라 출산(birth)이다. 모교회와 분립 교회의 관계는 본부와 지점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재구성된다. 자녀는 부모의 영적 DNA를 물려받지만, 자기만의 인격과 부르심과 지역적 표현을 갖는다. 캔자스시티 언더그라운드 네트워크는 이를 ‘가족들의 가족(family of families)’이라는 표현으로 정리한다.

브라이언 샌더스는 함께 강사로 섬긴 2024년 MICA 컨퍼런스(장소: LA 동양선교교회)에서  필자에게 인상적인 표현을 남겼다: “작아짐(smallness)은 현대 리더에게 떠오르는 영적 훈련(spiritual discipline)이며, 마이크로 처치는 그 영적 결실이다.” 이 표현은 마이크로 처치 운동의 가장 깊은 신학적 통찰을 압축한다. 그것은 단지 효율적인 교회 모델이 아니라, ‘큰 자아’, ‘큰 플랫폼’, ‘큰 교회’에 대한 우리 시대의 영적 중독을 치유하기 위한 영성 훈련인 것이다. 한국 교회가 이 ‘작아지는 길’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것은 단지 새로운 사역 모델을 도입하는 문제가 아니라, ‘교회론적 자기 이해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한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