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 교회> 한국교회를 돌아보며: '맥도날드화 교회를 넘어서는 북미교회들'

오늘 북미의교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잘 조직되어 있습니다. 예배는 분 단위로 설계되고, 설교는 정해진길이를 넘지 않으며, 새신자 등록에서 정착과 소그룹 배치에 이르는 과정은 표준화된 매뉴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사역은 부서로 분업화되었고, 성장은 지표로 환산되며, 사역자의 성패는 그 지표의 기울기로 평가됩니다. 그런데 역설이 있습니다. 이렇게 잘 정비된 교회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더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국의 신학자 존 드레인(John Drane)은 바로 이 역설을 신학적 언어로 포착한 학자입니다. 그는 『교회의 맥도날드화(The McDonaldization of the Church)』와 그 후속작 『맥도날드화 이후(After McDonaldization)』에서, 사회학자 조지 리처(George Ritzer)의 '맥도날드화' 대비 되는 ‘탈맥도날드 교회’ 개념을 교회론에 적용합니다. 그의 진단은 단순하지만 북미 및 한국교회에 깊은 고민 거리를 안겨줍니다. 교회는 소비문화를 비판한다고 말하면서, 실은 소비문화의 가장 깊은 작동 논리를 자기 몸에 이식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 글은 드레인의 '탈맥도날드화(de-McDonaldization)'라는 문제의식을 축으로 삼아, 미국의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 운동(Fresh Expressions of Church Movement)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모델들을 읽어 보려 합니다.
진단: 교회의 맥도날드화라는 네 개의 축
리처는 패스트푸드 산업의 합리성이 사회 전 영역을 재편하는 방식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효율성(efficiency), 계산가능성(calculability),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 비인격적 기술을 통한 통제(control), 그리고 규모(number) 입니다. 탈맥도날드화 교회는 이 다섯 가지 축들이 교회 안에서 어떤 현상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첫째, 효율성입니다. 최단 시간에 최대의 결과를 내는 것이 미덕이 되면서, 전도는 '방법'이 되고 제자도는 '커리큘럼'이 되었습니다. 회심은 몇 단계의 절차로 압축되고, 신앙의 성숙은 이수 과정으로 대체됩니다. 둘째, 계산가능성입니다. 셀 수 있는 것만 실재로 인정되면서 출석·헌금·세례의 숫자가 질을 대신합니다. 셋째, 예측가능성입니다. 어느 지점에서 예배를 드려도 동일한 경험이 보장되는 프랜차이즈 논리가 자리 잡습니다. 넷째, 통제입니다. 회중은 참여자가 아니라 잘 관리되는 수용자, 곧 소비자의 자리로 밀려납니다. 다섯째, 영성보다는 교회 규모가 우선이 됩니다.
리처가 덧붙인 여섯 번째 명제가 결정적입니다. '합리성의 비합리성(irrationality of rationality)'입니다. 완벽하게 합리화된 체계는 마침내 비합리적 결과를 낳는데, 그 결과의 이름이 바로 비인간화입니다. 드레인이 보기에 오늘 교회의 위기는 영적 갈망이 사라져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영성에 대한 갈망은 그 어느 때보다 큰데, 사람들이 그 갈망을 들고 교회로 오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교회가 스스로를 '영적 상품을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기관'으로 재정의한 순간, 교회는 ‘거룩한 공간’의 역할을 잃어 버립니다.
탈맥도날드화의 신학적 토대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드레인의 처방은 새로운 전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 탈맥도날드화가 또 하나의 방법론이 된다면, 그것은 맥도날드화의 논리로 맥도날드화를 치료하려는 자기모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가 『맥도날드화 이후』에서 제자도와 영성의 회복을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탈맥도날드화는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방식의 문제입니다. 신학적으로 이 전환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와 연결됩니다. 데이비드 보쉬(David Bosch)와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J. H. Wright)가 거듭 강조했듯, 교회가 선교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가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선교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면, 교회의 첫 과제는 생산이 아니라 분별이며, 성과가 아니라 참여입니다.
그 분별의 기준을 성육신이 제공합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말씀이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ἐσκήνωσεν, 에스케노센)'고 증언합니다.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은 복음은 언제나 문화의 옷을 입되 결코 문화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 성육신적 특수성이야말로 프랜차이즈 논리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신학적 반대 표현입니다. 즉, 탈맥도날드화된 교회란 효율이 다스릴 수 없는 것들 — 복음, 환대, 영성, 사랑, 우정, 인내 등 — 을 공동체의 중심에 되돌려 놓은 교회입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Fresh Expressions 운동은 2004년 『선교형 교회(Mission-Shaped Church)』 보고서와 로완 윌리엄스(Rowan Williams)의 '혼합 경륜(mixed economy)' 개념을 통해 제도화되었고, 2010년을 전후해 미국으로 건너와 초교파적 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 운동의 핵심 문법은 '이중 청음(double listening)', 곧 복음에 귀 기울이는 동시에 그 문화적 정황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는 정확히 맥도날드화의 반대 방향입니다. 맥도날드화가 정황을 지우고 모델을 이식한다면, Fresh Expressions는 정황에서 시작해 형태를 새로 빚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도시 문화 가운데 복음에 합당한 다양한 선교적 유형들인, 탈 맥도날드 교회 모델을 제시합니다.
4. 탈맥도날드화의 모델들: 미국 Fresh Expressions of Church
아래의 모델들은 각각 맥도날드화의 다섯 축 가운데 하나를 정면으로 무너뜨리는 탈 맥도날드화 교회들입니다.
(1) 디너처치(Dinner Church) — 효율성에 대한 저항
워싱터주 시애틀의 벌론 포스너(Verlon Fosner)가 쇠퇴하던 도심 교회를 식탁 공동체로 전환한 사례와, 뉴욕 브루클린의 세인트 리디아스(St. Lydia's)가 대표적입니다. 이들에게 식사는 예배 전후의 친교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배 그 자체입니다. 두 시간이 걸리고, 설거지가 남고, 대화는 통제되지 않습니다. 철저히 비효율적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비효율 안에서 누가복음 14장의 잔치, 곧 갚을 수 없는 이들을초대하는 그 식탁이 재현됩니다. 낯선 이가 손님이 되고 손님이 가족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결코 단축될 수 없습니다.
(2) 메시 처치(Messy Church) — 예측가능성에 대한 저항
2004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미국 여러 교단으로 확산된 이 모델은 이름 자체가 신학적 선언입니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만들고, 어질러 놓고, 먹고, 짧게 예배합니다. 순서는 매번 다르게 흘러가고 결과는 예측되지 않습니다. 이는 교회에 한 번도 소속된 적 없는 가정들을 겨냥한 형태로서, '정돈된 예배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만 남는' 필터를 의도적으로 제거합니다.
(3) 제3의 장소 교회 — 통제에 대한 저항
도서관 처치, 산 처치, 일터 처치 그리고 알라바마주 셀마시 블루진 처치(BlueJean Church)처럼 예배당이 아닌 '제3의 공간'에서 모이는 형태들(청년들을 위한 창업 플레폼)입니다. 강단이 없는 공간에서는 목회자가 공간을 통제할 수 없고, 회중은 수동적 수용자에서 대화의 참여자로 이동합니다. 질문이 허용되고, 의심이 추방되지 않으며, 결론이 미리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4) 신수도원 운동 — 계산가능성에 대한 저항
노스캐롤라이나 더럼의 루트바 하우스(Rutba House)를 비롯한 신수도원(New Monasticism) 공동체들은 '열두 표지(12 Marks)' 가운데 하나로 '안정성(stability)', 곧 한 장소에 머무르겠다는 서약을둡니다. 성장은 이동으로 얻어지지만 신실함은 머무름으로만 얻어집니다. 버려진 도심에 정착해 이웃과 함께 나이들어 가는 이 공동체들은 숫자로 자신을 증명하기를 처음부터 거부합니다.
(5) 혼합 생태계(Mixed Ecology) — 규모 논리에 대한 저항
Fresh Expressions 운동의 미국적 특징은 기존 회중을 해체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전통적 회중이 그대로 존속하면서 그 곁에 작은 새로운 표현들이 자라나는 구조, 곧 '높은 첨탑과 새로운 표현이 함께 있는' 형태입니다. 이는 하나의 모델이 모든 정황을 대체해야 한다는 프랜차이즈적 사고 자체를 폐기합니다. 다양성은 과도기가 아니라 목표입니다.
글쓴이: 주상락
(뉴저지 서번트교회 담임목사, 미국 Bakke Graduate Universtiy 선교적목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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