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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 액티브 시니어를 섬기는 애틀란타 섬기는교회(활천 2026년 10월호)

작성자 사진: 주 상락
주 상락
9월 21일
5분 분량

한국은 2025년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재외국민 사회의 고령화 속도는 이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인구학적 전환 앞에서 대부분의 교회는 노년 성도를 '돌봄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경로당의 연장선에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 그친다. 그러나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운동은 애초에 교회의 정체성을 봉사 프로그램의 총합이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백성'(sent people)으로 정의해 왔다. 그렇다면 “노년의 성도는 언제까지 보내심을 받은 존재인가?”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의 디아스포라 한인교회인 섬기는교회는 이 질문에 분명한 신학적 답을 제시한다. 성도들에게 은퇴는 있어도 선교적 소명에는 은퇴가 없다는 것이다. 레슬리 뉴비긴 또한 지역 회중이야말로 복음의 유일한 해석자(hermeneutic of the gospel)이며, 회중의 삶 그 자체가 복음의 신뢰성을 세상에 증거하는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노년 성도로 구성된 회중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초고령사회 속에서 실버 세대로 이루어진 회중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는, 그 자체로 복음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세상에 증거하는 해석학적 사건이 된다. 애틀란타 섬기는교회의 액티브 시니어 사역을 선교적 교회론의 창으로 다시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명의 재발견: 유배장의 정체성으로 노년을 살다


    애틀란타 섬기는교회의 액티브 시니어 사역이 출발하는 지점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정체성의 물음이다. 연세대 철학과 김형석 명예교수는 노년기에도 소명은 재확인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알란 록스버그와 스캇 보렌은 선교적 교회의 과제가 특정 프로그램에 집중하는 데 있지 않고, 교회가 처한 상황과 문화 속에서 선교적으로 적합한 존재, 곧 '선교적 적합성'(missional fit)을 발견하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섬기는교회가 65세 이상 성도들을 대상으로 '액티브 시니어' 사역을 전개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선교적 적합성의 발견에서 비롯된 실천이다. 여기서 핵심은 '유배자'(exile)의 정체성이다. 크리스텐덤 시대의 교회는 스스로를 사회의 중심에 서 있는 '정착자'로 인식했고, 노년의 신앙 역시 이 정착자의 시선에서는 쇠락으로 읽혀 왔다. 그러나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 곧 유배자의 시선으로 보면 노년은 또 다른 기회가 된다. 유배자는 정착자와 달리 주변부에 머물지언정, 삼위일체 하나님이 보내신 일상 속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섬기는교회가 실버 세대를 향해 반복적으로 확인시키는 신학적 전제다. 노년기에 소명을 재확인하는 것과 유배자로서 주님 안에서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 것은 같은 실천의 두 이름인 셈이다. 이러한 정체성 이해는 오스 기니스가 말한 소명의 정의, 곧 소명에 응답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성취하는 길이라는 통찰과 정확히 맞물린다. 섬기는교회는 65세 이상 성도들이 생애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받은 소명을 따라 살아가도록 격려하며, 이를 통해 은퇴 이후의 삶을 신학적 공백이 아니라 소명의 연속으로 재구성한다.섬기는교회의 액티브 시니어 사역은 회심의 개념을 노년기에도 멈추지 않는 과정으로 확장한다. 은퇴는 경력의 종료를 뜻할 뿐, 하나님 나라를 향한 습관의 재형성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배자의 정체성으로 노년을 산다는 것은, 곧 은퇴 이후에도 계속되는 회심의 여정을 산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레이스 에이징: 은혜로 나이드는 선교적 삶


    애틀란타 섬기는교회는 나이와 직업에는 은퇴가 있지만 선교적 소명에는 은퇴가 없다고 믿는다. 이 신념은 '은혜로 나이 드는 삶'(Grace-Aging)이라는 독자적 개념으로 응축된다. 인간은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대한 실존적 고민과 두려움은 오히려 깊어진다.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이해를 통해 죽음이 더 이상 저주가 아님을 표현할 수 있는 공동체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이러한 공동체를 '우정 공동체'라 부른다. 그는 먼저 됨을 실천하고 소명에 따라 선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섬기는교회가 실버 세대를 '지배자가 아닌 유배자'로, 담임목사안 안선홍 목사의 표현을 빌리면 '노쇠하고 병약한 이들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는 완숙한 성도'로 재정의하는 작업은 바로 이 그레이스 에이징의 신학적 실천이다. 폴 스티븐스는 나이 듦이 결코 인생의 점진적 퇴보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더 온전한 인간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성경 역시 '나이 듦'의 유익함을 반복적으로 증언한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며 공의로운 길에서 얻어지는 것이고(잠 16:31), 노년은 나이 듦을 퇴보가 아니라 지혜와 경험의 축적이 동반된 삶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그레이스 에이징의 신학은 '총체적 성결'(總體的 聖潔)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총체적 성결이란 모인 예배(gathered worship)와 흩어진 삶(scattered life)을 분리하지 않고, 성도의 전 존재와 전 생애를 거룩함의 자리로 이해하는 신학적 틀이다. 실버 세대에게 이 총체적 성결은 예배당 안에서의 신앙고백에 머무르지 않고, 은퇴 이후의 일상 — 삶의 현장, 자녀와 손주와의 관계, 그리고 죽음을 향해 가는 시간 그 자체 — 을 거룩한 선교의 자리로 재해석하도록 이끈다. 은혜로 나이 든다는 것은, 결국 총체적 성결이 노년의 언어로 번역된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에이징: 창의로 나이드는 선교


    애틀란타 섬기는교회의 액티브 시니어 사역이 실제로 구현되는 방식은 '크리에이티브 에이징'(Creative Aging) 프로그램이다. 오카리나, 한지공예, 붓글씨, 하모니카, 장기, 바둑, 탁구, 뜨개질, 서예, 가곡, 낙상 예방(건강) 등 관심 분야별 자발적 소그룹을 중심으로, 성도들은 지역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문화와 예술의 주체로서 사회적 역할을 담당한다. 이는 단순한 취미 활동의 나열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정교하게 설계된 선교적 실천이다. 이 프로그램의 신학적 근거는 하나님의 백성이 복음을 증거하며 복음대로 사는 것에는 모험이 뒤따르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그 모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확신에 있다. 교회가 '선교적 모험'을 감행해야 하는 이유는, 그 모험을 통해 교회가 가시적 공동체로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각 소그룹은 이웃과 함께하는 공연과 전시를 창조적으로 기획해 선교적 목적을 실현하며, 실버 성가대는 매주 첫째 주일 예배에서 은혜로운 찬양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효과적인 노년 사역은 노년 성도를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사역의 파트너로 세울 때 비로소 열매를 맺는다. 이러한 접근은 조지 헌터가 말한 '비신자를 위한 교회'(Church for the Unchurched)의 원리와도 맞닿아 있다. 예술과 취미라는 접촉점을 통해 지역사회 비신자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복음의 통로를 여는 전략이 노년 사역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섬기는교회는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알란 허쉬는 교회의 선교적 DNA(mDNA)가 사도적, 선지자적, 복음전도자적, 목회자적, 교사적 은사(APEST)의 균형 잡힌 작동을 통해 회복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엡 4:11-13). 크리에이티브 에이징 프로그램이 흥미로운 지점은, 이 다섯 가지 은사가 나이와 무관하게 실버 세대 안에서도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서예반과 가곡반을 이끄는 이들은 목자적, 교사적 은사를 발휘하고, 지역사회를 향해 공연과 전시를 기획하는 이들은 복음전도자적 감수성을 실천한다. 나이 듦이 은사의 소멸이 아니라 은사의 재배치라는 사실을, 섬기는교회의 소그룹들은 삶으로 증거하고 있다.


사도적 회중: 실버 세대의 교회론적 재배치


애틀란타 섬기는교회 액티브 시니어부의 신학적 정점은 '사도적 회중'(Apostolic Congregation) 개념이다. 조지 헌터가 제안한 이 개념은, 교회가 좁은 교리적 의미의 사도 계승을 넘어 초대교회처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타겟 인구, 그 문화에 소통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요청이다. 섬기는교회는 이를 실버 세대에 적용하여, 실버 세대 성도들 역시 선교의 주체로서 하나님이 보내신 현장에서 성육신적 관점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도적 회중'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곧 교회는 특정 프로그램에 집중하기보다는 이웃이 살아가는 보내진 일상에 참여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는 원리를 실버 세대의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섬기는교회는 이를 위해 65세 이상 성도로 구성된 액티브 시니어부를 별도의 은퇴자 모임이 아니라 세대별 전도, 선교 구조의 한 축으로 세운다. 초고령화 시대에 신앙의 가치를 중시하는 실버 세대의 선교적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섬기는교회의 확신이다.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선교가 몇몇 전문 사역자의 과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사도적 회중'으로서의 실버 세대는 예외적 존재가 아니라, 애초에 선교가 세대와 연령을 가리지 않는 하나님 백성 전체의 부르심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 주는 증인이다.


엑티브 시니어, 선교적 교회를 위한 함의


    애틀란타 섬기는교회의 액티브 시니어 사역은 세 가지 점에서 디아스포라 한인 교회를 위한 선교적 함의를 지닌다. 첫째, 노년기를 선교적 정체성의 소멸이 아니라 재확인의 시기로 신학화함으로써, 고령화 사회 속 교회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둘째, 그레이스 에이징과 크리에이티브 에이징이라는 구체적 신학적, 목회적 개념을 통해, 추상적 담론에 머물기 쉬운 선교적 교회론을 실버 세대의 삶의 자리에서 구현 가능한 실천으로 번역해 낸다. 셋째, 실버 세대를 '사도적 회중'으로 재배치함으로써, 세대 통합적 선교 구조 안에서 노년 성도가 담당해야 할 고유한 자리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한다. 이 모든 통찰을 한국 교회의 목회 현장에 적용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남는다. 우리 교회의 65세 이상 성도들은 지금 '보내심을 받은 자'로 불리고 있는가, 아니면 '보살핌을 받는 자'로만 머물러 있는가. 실버 세대를 위한 프로그램의 유무가 아니라, 그들을 선교의 주체로 세우는 신학적 언어와 구조가 있는가가 관건이다. 섬기는교회의 사례는 그 언어와 구조를 '유배자', '그레이스 에이징', '크리에이티브 에이징', '사도적 회중'이라는 네 개의 신학적 좌표로 제시한다. 애틀란타 섬기는교회의 액티브 시니어부는 믿음을 노년의 언어로 구현해 낸 하나의 모델이며, 실버 크리스천이야말로 실버 세대를 복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선교 주체라는 것이 이 사역이 던지는 결론이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 사회, 한국 교회에도 이 물음은 결코 낯설지 않다. 정착자가 아닌 유배자로, 은퇴자가 아닌 사도적 회중으로 노년을 신학화하는 작업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시대의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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